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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3. 13世 〉30. <태사공>여칙재공휘시헌묘갈(汝則齋公諱時憲墓碣)
1. 문헌 목록 〉14. 14世 〉1. <요재공>장사랑공휘숙묘갈명(將仕郎趙公諱淑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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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태사공>풍양재기(楓陽齋記)휘난서(諱蘭瑞)
楓陽齋記 龍城治西楓岳山下柑洞村後書堂洞有四尺者故折衝將軍翠竹齋趙公巾爲之藏也而子若孫曾之墓累累然相望於東西者乃玉川氏族位之所也因子孫之貧寒齋沐説話之所尚未營建矣往在乙巳閤宗協議經始一齋而丙午吿幼揭楣曰楓陽齋徵記于不佞噫爲其子孫而慕其先祖者天理仁事之自然苟能血承氯禪於先祖者豈有間斷於斯須顚沛之頃哉羹焉墻焉而無非可慕之地春露秋霜無非可慕之時也롩暢而敬油然而感者亦非勉強而自爾也由是言之此皆尋常之物而猶然且况體魄所藏之地乎且芬苾灌將之所乎嗚呼自今玄黃翻覆人類化爲羽毛異語邪説日熾月盛祭無益之説充滿宇宙父而勸子者惟利是務兄而導弟者惟利是尚所謂尊祖敬宗追遠報本之道屬之越人章甫矣噫豺賴亦知報本之道鳥鳥猶能反哺之誠以人爲名者乃至於此耶是可忍也孰不可忍也塘此漆漆之日貴宗諸彦能不失生聖賢之典型建齋舍而致其誠掃封域而慕葢切亦可謂萬屋皆燼靈光獨在狂瀾奔趨砥柱屹屹不佞深感此擧之有補風化忘僣而記之如此焉 丁未暮春 玉川 趙敏植 撰 풍양재기(楓陽齋記) 용성(南原) 고을 서편 풍악산(楓岳山) 아래 감동(柑洞)마을 뒤 서당골에 있는 四척봉분은 고절충장군 취죽재 조공의 가성인데 자손의 묘소가 층층이 이어져 동서로 서로 바라본 자는 옥천 조 씨 세장지었다. 자손이 가난하여 재계하고 푸주할 재각을 아직 세우지 못하였더니 지난 을사(乙巳)년에 제종이 협의하여 제각을 착공하여 병오(丙午)년에 락성하며 풍양재로 현판을 걸고 내게 기문을 청하니 슬프다. 그 자손이 그 선조를 추모한 것은 천리인사의 자연이니 진실로 능히 선조의 피를 잇고 기운을 받은 자 어찌 잠깐 사이라도 간단히 있겠는가. 국과담장(舜慕堯於墻羹)이 가히 생각할 땅이 아님이 없고 봄 이슬 가을 서리가 가히 생각할 때가 아님이 아니니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공경하고 구름 피어오르듯 왕성하게 감동한 것은 억지로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요 스스로 그런 것이다. 이로써 말하면 이는 다 심상한 물건이라도 오히려 그러하거든 하물며 체백이 계신 땅이며 또 신성하게 강신한 장소이겠는가. 오홉다 이제 천지가 번복하여 사람이 금수로 화하고 다른 말과 간특한 소리가 날로 성하며 제사가 유익이 없단 말이 천지에 가득하고 아비가 자식을 권한 것이 오직 이것이요 형이 아우를 지도한 것이 오지 각사한 것이니 이른바 선조를 존중하고 종족을 공경한 도리가 땅에 떨어져 찾아볼 수 없도다. 아! 승냥이와 수달피가 또 근본을 갚을 도리를 알고 새와 까마귀도 오히려 도로 먹인 정성이 있는데 사람으로 이름한 자가 어찌 이에 일은가 이를 가히 참으면 무엇을 가히 참지 못하리요. 이어 둔때를 당하여 여러 종 씨는 능히 옛성현의 예법을 잃지 않고 재각을 지어 그 정성을 다하고 묘도를 쓸어 그 추모를 더하니 또 가히 萬가구가 다 타도 제각(靈光)이 홀로 남고 미친 물결이 내달여도 주추와 기둥이 높았다 일으리로다. 내가 이 일이 풍화에 보탬이 될 것을 깊이 감동하여 참월함을 잊고 이와 같이 기록함. 己未暮春 옥천(玉川) 조민식(趙敏植) 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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